단 1회 평가 후 저성과자로 구제보단 해고에 초점 맞춰

정부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북' 있으나마나.. 현실에서는 딴판

형식적 절차에 그칠 우려 노동자에 '쉬운 해고' 공포

경향신문|김지환 기자|입력2016.01.05. 06:00

 ‘단 1회의 상대평가 결과를 가지고 노동자를 저성과자로 분류한다. 해당 노동자에게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한다. 이수 기간은 일주일 이내로 설정한다.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이라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뚜렷한 개선이 없으면 해고가 이뤄진다.’

경향신문이 4일 입수한 한국노동연구원의 ‘인사평가제도 현황과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담긴 501개 대기업 인사 담당자의 설문조사 응답을 요약한 것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오찬 간담회에서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북은) 해고에 대한 안전장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인사관리가 주먹구구식인 상황에서 과연 가이드북이 안전장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북은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은 형식적인 절차에 그쳐서는 안되며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기업 중 46%는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의 기간이 일주일 이내에 불과하다.

  또 최소 1년 또는 2년 동안 인사평가가 하위 비율(1~20%)이나 최하위 등급이라는 이유로 저성과자로 분류하는 기업이 70~80%에 이른다. 기업이 대상자의 업무능력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보다 형식적인 절차를 마련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는 셈이다. 가이드북 최종안 확정 시 일부 대기업은 짧은 기간이나 저성과자 선정 기준 등을 손볼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이 주먹구구식 인사관리 관행을 개선할지는 불투명하다.

가이드북은 상대평가 방식은 합리성을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절대평가를 혼용하는 방식도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평가등급 배분을 강제할당 방식으로 하는 기업의 비율이 무려 67.1%에 이르는 상황이다. 기업이 기존의 상대평가 방식을 최하위 등급은 일정 인원을 강제할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정하는 게 쉽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피디아, 어도비 시스템 등 해외 유수 기업은 “강제할당 방식이 노동자의 좌절감과 분노만 쌓이게 할 뿐”이라며 이를 철회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정동관 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해외에서도 성과주의 인사관리에 기반을 둔 해고 등을 줄이려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기업 내 협업을 해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해고 절차와 기준을 공정하게 한다고 하지만 이것이 성과주의를 지나치게 강화하는 쪽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환 기자>